배티 순교성지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진천 백곡면, 배티고개 아래 골짜기마다 교우촌이 숨어 있었다. 삼박골, 절골, 용진골, 발래기, 새울, 불무골… 병인박해 전까지 열 군데가 넘었다. 기해박해와 병오박해가 거듭되자 내포에서 쫓겨온 신자들이 이 산골로 모여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일대를 한국의 카타콤바라 부른다.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에게 배티는 사목의 근거지였다. 1849년 상해에서 서품되어 돌아온 그는 열두 해 동안 전국의 교우촌을 걸어서 순방하다 1861년 길 위에서 과로로 숨졌다. 순교가 아니라 길에서 죽은 목자, 그래서 백색 순교자라 불린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로 이 일대에서 순교자 55명이 나왔고, 기록에 이름이 남은 이는 29명, 나머지 26기는 이름 없는 무덤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