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제천 봉양읍, 배 밑바닥을 닮은 골짜기라 하여 배론(舟論)이다. 이 좁은 골짜기에 한국 교회사의 세 장면이 겹쳐 있다.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황사영은 옹기굴로 위장한 토굴에 여덟 달을 숨어 명주천에 13,384자의 백서를 썼다. 박해의 실상과 교회 재건 방안을 북경 주교에게 알리려던 편지였다. 전달자 황심 토마스가 먼저 붙잡히고 황사영도 체포되어 그해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사됐다. 아내 정난주는 제주로, 어린 아들은 추자도로 유배됐다. 1855년에는 장주기 요셉이 자기 집을 내놓아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당이 섰다. 푸르티에·프티니콜라 신부가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치다 1866년 붙잡혀 새남터에서, 장주기는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최양업 신부의 묘도 이 골짜기에 있다.